길 잃은 양과 갈림길

2021. 10. 3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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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돌아오는 그 순간은 늘 그렇듯이 갑작스럽다. 순식간에 빼앗겼던 그 날처럼.

 

*

 

우주의 끝을 본 적이 있어?

모든 것이 흘러 들어가는 곳이 우주라면,

그 우주에는 끝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니.

 

*

 

어쩌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숨을 쉬고 이렇게 있을 수 있었을까.

기억이 돌아오는 그 순간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았던 그 순간들처럼 그 어떠한 거창한 계기 때문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잔인한 우주는 그렇게 늘 고요했고, 가장 소중한 기억을 빼앗아갔던 그 순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작고 사소한 계기로 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던 그 날은. 그 순간은.

투명한 유리잔을 쥐고, 멍하니 출렁이는 그 평면을 멀거니 바라보다, 그러고 보니 이건 팀이 좋아하는 건데. 그렇게 무의식적인 생각을 하다, 팀이 누구였더라?

. , 나의 친구. 그렇게 기억의 물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비틀거리고 있다 보면, 문득 비참함에 입을 틀어막은 채, 그렇게 턱 막힌 숨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었지.

그렇게 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그 사소하고 비참한 일상 속에서 난 그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내었다. 어떻게. 어떻게 내가. 네가.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잊을 수가 있었느냐고,

우주가 빼앗아간 것은 비단 기억뿐만은 아니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비참함 또한, 거기에 있었다.

 

*

 

우주는 끝이 없어?

. 매일이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단다, 아가야.

끝이 없으면 어떡해?

어떡하긴, 그 영원히 끝나지 않을 끝을 향해 가보면 되지.

 

이렇게, 두 손을 잡고.”

 

*

 

우리의 시간은 어느 순간, 이렇게 빠르게 흘렀나 보다.

우리는 그 시간만큼 성장했고, 그 성장한 만큼 자라진 못했지만

당장이라도 네가 있는 지구를 향해 셔틀을 타고서라도 달려갈 다리를 붙잡은 것은 함께 돌아온 너와의 사랑스러운 추억만큼이나 묵직한 우리 사이의 고통이었다.

 

기억이 돌아왔어,

너와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 나는 기억력이 좋다고 네가 말한 것처럼 사소한 것까지도 기억을 되돌려받았는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주저해서.

 

오랜만에 서랍 속 깊숙이에 넣어두었던 술을 꺼내 들었다.

타들어 가는 심정만큼이나 메말라가는 기도였다. 매 순간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기억 속에서 알코올에라도 한 번 기대볼까, 술은 자제해달라 우는 시늉을 해보았던 친구의 말도 무시한 채 멍한 눈으로 뷰 스크린 너머의 찬란한 별들을 바라보다 나는 우연히 걸린 시선 속 술병의 글줄들을 읽는다. , 이 술은 팀과 생도 시절에 자주 마시던 건데. 아니, 자주는 아니었지. 그때도 몸이 약했으니 자주 마시면 안 된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자주 마셔주진 않았다. 그래도 예외적으로 함께 마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꼭 이 술을 마셨다. 순전 그녀의 취향이었다. 약해빠진 자신은 술은 자주 마시지 못했기에, 가끔 술을 즐기고 했던 그녀가 좋아하는 것으로 함께 잔을 나누곤 해서.

 

나는 문득 웃었다. 그렇게 웃다가 울었다. 울면서 웃었다.

참을 수 없는 격정은 한심한 자신을 끝의 끝까지 몰고 간다. 나는 그렇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차마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우주를, 그 너머의 끝을 바라보지 못했다.

, 나는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너와 함께했던 기억을 찾고 있었는데.

정작 찾아버린 기억 속에서 헤매는 나는 모든 게 너를 가리키고 있는 와중에도 뒷걸음질이나 치고 있었다. 참 한심하기도 하지.

 

, 타이미어스. 웬델 타이미어스 강.

날 원망하고 있니?

그도 아니라면.

그 우주의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니.

 

*

 

ㅡ우주의 끝?

ㅡ그래, 그게 뭐든 같이 가자.

그게 어디든 함께 가기로 했잖아.

 

*

 

날이 가면 갈수록 선명해지는 차디찬 날의 단면처럼 반짝였고, 그만큼 차가웠다.

한 번 잃어버렸기 때문일까, 오히려 그 전보다 생생하고 또렷한 순간순간들이 그 이전의 자신이 놓친 것들을 깨닫게 해주곤 한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데, 마치 무언가에 막힌 듯 수면 아래로 잠겨가는 순간이라도 떨쳐 일어나 삶을, 시간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쿼터는 침묵 속에 맞이하는 또 다른 고통이자, 날 선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곳이었다.

나는 침대에 털썩 누워 멍하니 그 천장을 바라본다.

 

이렇게 숨 막히는 정적에 둘러싸여,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 있노라면 자신은 어느새 그녀를 생각하고 있어서.

모든 것이 흘러 들어가는 우주.

그리고 그 우주의 끝.

끝없이 그 순간을, 그녀를 생각하고 있는 자신은 마치.

우주를 벗어날 수 없는 별들처럼. 나는 너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어서.

이게 바로 중력에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싶은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어 바람 빠진 웃음을 짓다가, 뜨거워지는 눈가를 꾹 눌러 그렇게 눈물을 눌러 참는다.

 

기억이 돌아오던 그 순간처럼 나는 너를.

너에 대한 내 마음을 문득 깨달아 버려서.

그렇게 참을 수 없이 서러워지고 말았다.

 

나를 바라보는 네 눈빛이 힘들었어,

나를 바라보면서 죄책감을 상기시키는 네 모습은 마치 날 닮아있어서.

그래서 숨이 막힌다 생각했는데, .

사실 아니었나봐. 그게 아니었어.

아니, 그런 것도 있겠지. 그럴 거야.

 

그런데 말이야, .

 

나는 고요한 정적 속에 울리는 패드의 알림에 흐린 시야로나마 패드를 켰다.

 

그런데, .

내 소중한 사람아.

 

담담히도 꺼내어지는 네 말마디에 흐려진 시야 속에서 바보같이 웃다가도, 감히 바라서는 안 될 그 단 한마디를 속삭여주는 너를 담은 패드를 끌어안고서는, 새어 나오는 울음을 삼킨 채 무너지듯 잠겼다. 잠겨 내려갔다. 그렇게 끝없이 잠겨 내려갔다.

 

, 티미. 단 한 명뿐인 사람아.

 

마치 기적과도 같아서, 이런 나라도 사랑한다 말해주는 네가 마치 허상 같아서 나는 패드를 켜 다시, 다시. 네가 있을 그곳을 향해, 똑바로 바라본 채 그 무거운 말마디를 열었다.

 

꿈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나는 내 기억을 찾았고, 그리고 나는 이제 알아버렸어.

, 그대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

 

함께 가자, 우주의 끝으로.

그 영원히 오지 않을 끝을 향해, 다시는 놓지 않을 손을 잡고서.

Posted by 유정s
,



 

지구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았다.

그렇기에 더없이 부족하기만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직은 채 새벽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저도 모르게 떠진 눈은 몇 분간 가만히 천장 위를 바라보았던가. 무의식적으로 점등을 외칠 뻔했던 졸음에 잠긴 목소리는 제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팀의 모습에 아차 싶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기는 싫었기에 네 고동빛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주다, 이내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이르게 찾아온 새벽 속의 아침은 저로도 족했다.

 


그렇게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서면, 간밤에는 끊이지 않게 복작였을 거실을 지나쳐 가만히 테라스의 문을 연다. 그 열린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은 채 밝아지지 않는 새벽의 바람. 커피라도 타서 이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면 좀 더 좋았으려나 곱씹어 보다가도 이내 커피는 마시지 말라며 부드럽게 타일렀던 네 목소리가 떠올라 이내 말아버리고 만다. 그렇게 익숙하고 향기로운 커피의 향도, 곁에 자리하고 있었던 따스한 체온 또한 있지 않아, 테라스를 딛고 서있는 건 오롯한 자신. 채 사라지 않은 머리 위의 우주와, 수많은 별과, 간 밤에 스쳐 지나갔던 잃어버린 과거의 조각. 그 수많은 것들이 뒤엉켜버렸기 때문이었다.

 


ㅡ니나.’

 


지금보다는 더 어렸고, 어린 만큼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내가,’

 



내가 널 죽였어.

 



그 시절의 빼앗긴 이야기들이 문득 꿈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에.

걸치고 나온 카디건을 조금 더 여몄다. 더디게만 흘러가는 이 새벽 속에 잠기는 것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던 기억의 단편.

 

바람이 분다. 살갗 위로 스치는 그 감촉이 느릿하게 타고 흘러들어와, 드문드문 비어 있는 기억을 찾아 그 서리를 품은 채 또아리를 틀었다. 마치 제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라는 듯이.

 




*

 




생각해 보면, 그 전까지 부족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똑똑한 머리와 재능.

훌륭하신 부모님과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언니. 부족하지 않은 환경. 사실 모든 것이 그랬지. 부족한 줄 모르고 살다가, 잃어버려서야 알게 되는 게 그 풍족함이라고 누군가는 그랬다. 그러니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병으로 쓰러졌던 일곱 살의 그 해 말이다.

 

 


아직은 어렸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과학이 발전하고 발전해 저 미지의 우주까지 나아가는 게 지금의 시대라는 데, 그 시대에서도 치유하지 못하는 희귀병이 자신에게 있을 줄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온 세상이 노래지다 못해 희게 질려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가 관두었다. 몸은 점점 질려가는 백지장처럼 나빠져만 가고 이러다가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 그게 다가 아닌, 저가 아프기 시작하자 온 집안이 마치 죽음을 직전에 앞둔 듯이 슬픔에 휩싸였던가, 그래서 언니는 제 손을 붙잡고 우는 듯 말았던가. 확실한 것은 저 하나로 인해 부족함이 없었던 그 삶이, 그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병마에 드리워진 듯 좀먹혔다는 것이었다.

 


병실 바깥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 좋아했던 여름이 찾아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시간엔 그저 창문 틈으로 쏟아지는 여름의 햇살 한 자락이라도 잡아보려 손을 뻗어, 시간이 흐르면 찾아오는 어두운 밤의 수놓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저 수 많은 별들 사이로 헤쳐나가는 기분은 무엇일까. 병든 몸은 여기에 있지만 꿈 속에서라도 그 어드메에서 만난 고래의 등을 타고 넓은 우주를 유영하던 시간들,

 


아마 그때부터였겠지. 우주로 향하는 게 일생의 꿈이자 목표가 된 것이.

잠에 들면 여전히도 꿈속에서 만난 환상의 존재와 함께 별들 사이를 걷곤 하던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아보자면, 사실 그렇게 큰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어린 마음에 자유로워 지고 싶었던 순간엔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꿈꿨기 때문에,

 


조금쯤은, 막연히 생각했던 그 길을 따라 걸었을지도 모르지.

어린 시절의 아팠던 기억은 강했고, 그 시절의 꿈 또한 선명하게 드리우는 법이었다. 그래서, 막연히 생각하고 생각해왔던 그 기억을, 꿈을 따라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 걸었기 때문에, 아카데미 입학 통지서를 받고도 조금쯤은 정신이 멍했다.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 한 막연한 일이 현실로 손에 쥐어서?

 


아니, 그게 아니었다.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든 입학 통지서. 그리고 갖춰 입은 붉은색 제복은 참으로 이상해서, 마치 있어선 안 될 곳에 끼어든 불청객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각자 저  마다의 이상과 꿈을 안고 찾아드는 별들의 공간에서, 단지 그 어렸을 때의 기억만을 품에 안고 고찰도 없이 끼어든 이 존재란 무엇이었을까?

 


아직은 어렸던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소한 계기일지라도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아직은 몰랐기에, 그저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여직 자라지 못한 정신은 사소하게 흔들려서, 꼬박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런 나의 바보같은 생각을 바로잡아준 ‘-’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

 

분명히 존재했던 기억 속의 ‘-’는 마치 가위로 그 부분만 잘린 채 도려졌기 때문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의 범람 속에서 마치 허리가 잘려진 듯 그 부분에서만 제자리였다. 저 멀리에서 희끗하게 올라온 태양이 보인다. 새벽도 이제는 끝인 모양이지.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우주라고, 그 꿈을 조금 더 확고하게 지켜준 너.

이제는 그 존재가 누구인지는 아는데, 기억 속의 너는 여전히 난도질을 당한 듯이 제자리다.

선명하게 푸른 도화지에 그 부분만 먹을 칠한 듯이 생각이 나지 않아, 꼬박 차오르는 설움에 머리를 매만져 보아도 떠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안젤라.’

 


떠오르는 것은 네가 불러주었던 그 이름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 천사의 이름을.

Posted by 유정s
,

*충동적으로 썼지만 카이니나로 써보고 싶었던 글이니까...:3: 이루어질랑가 모르겠지만 완결내서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긴 합니다

*ㅋ ㅏ일 사랑ㅎ ㅐ!!





전해주고 싶었던,

w.유정








케니스.,



그런 날이 있었다.

 

문득 어제와도 같은 날을 살다가,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묵묵히 걸어가던 그 순간,

과거의 시간들이 궁금해 질 때가.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은 만나지 못했던 때가.

기억들은 마치 흘러가는 강물과 같아서, 그 결을 따라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지나간 시간들이, 당신이 아파하던 그 순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순간들에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손을 잡아주고 싶다는 생각.

 

지금 이 순간에도 고개를 돌리면 스쳐온 과거가 되는데, 그 흘러오고 흘러온 순간들이 안타깝기만 해서, 지금이라도 어렸던 당신의 작은 어깨를, 그리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고. 그것은 마치 그럴 수 없는 것에서부터 탄생하는 미련을 닮아있었다.

 

니나.”

?”

케니스.”

, 그래.”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기에 더 안타까운 시간들이었다.

 




*

 






만약 어렸던 너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은 전해주고 싶어.

 






*

 





…….”

여기서 뭐해요?”

 

세상은 비현실속의 연속이었다.

끊임없이 흐르고 멈춰 서지 않는 강물 속에서도

굽이치다 돌아서 흐를 때가 있듯이.

 

시간을,

아니 기적을 걷고 있었다. 나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볼을 꼬집어 보려다가도, 어딘지 무서워 보이는 표정 속에서도 일정 간격을 둔 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어린 시선을 느끼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눈앞의 어려진, 아니. ‘어린너를 보았다. 카일은 불현 듯 울렁거리는 마음에 눈을 굳게 담았다 떴다. 그리고 다시금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짙은 흑발의 머리는 곱슬 거린 채 턱 끝까지 내려와 수줍은 양 볼을 감싸고, 예나 지금이나 선명할 정도로 아름다운 녹음의 두 눈은 숨길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빛이나서.

 

, 너로구나.

이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스쳐지나가듯 마주했던 어렸던 너의 모습과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니나.”

, 제 이름을 어떻게 알아요?”

케니스.”

 

하하, 카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어린 케니스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 했는지, 낯선 사람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두려우면서도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런 사람이 당신이었지. 그게 그대였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단 한가지는 명확했다. 아주 또렷하게, 이것이 바로 주어진 순간이자 기회라고. 

카일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채  작기만 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녕.

평생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은 꺾인 채 그렇게 하나의 점으로 맞물렸다.

 

기적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ㅡ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Posted by 유정s
,



 

우주력 2263.05.06.

 

 

언젠가부터 나는

한 권의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드문드문 써내려가던 공백이었지만,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실은 익숙하지 않은 종이 위의 빽빽하게 적곤 하던 당신의 그 아득한 시간들이 담겨져 있는 일기장의 모습에 어느 순간부터 어울리지 않는 일기를 쓰고 있었다는 것.

 


익숙하지 않았기에 손을 뻗는 것이 어려웠으나, 막상 펜을 쥐고 나니 그 새 하얗고 보드라운 감촉의, 단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새카만 잉크와 잉크를 머금은 펜, 그리고 단 한 명의 독백만이 존재하는 이 공허한 세계를 맞닥트리니 그 숨 막힐 듯 고요한 정적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일기의 존재가 떠오르거나 전할 수 없는 말이 있으면 일기장을 찾았고…….

비명을 지르듯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면 집어삼킬 것만 같은 어둠도 공백의 끝없는 숨소리에 집어삼켜지는 밤이었기에,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마치 죽음의 영원한 안식처럼 고요한 이 일기장을 찾게 되는 것은,

이렇게 펜을 쥐어 지금 이 순간마저 글자를 적어내려 가고 있는 것은.

 


나는 어떤 말로부터 시작해야 할지 까마득히 몰라, 까맣게 길을 잃은 사람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어떤 말부터, 어떤 말을 쏟아내야 이 공허하고 참담한 심정을 덜어, 다시금 일어설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 모든 것이 마치 각인처럼 아프도록 새겨집니다. 하지만 비워내야 했기에, 비워내서 이겨내야 하기에나는 오늘도 덜어보고자 비겁한 변명을 늘여놓습니다. 나는 그래야만 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이었는지.

원망하지 않고, 탓하지 않지만 마치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엉망으로 비틀어 놓은 판 위의 어질러진 장기 말들의 비명처럼 들려 쉬이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함선 안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봅니다. 다만 나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잔인한 눈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 칼로 마치 살이 베이는 것만 같은 고통으로.

 


하지만, 그래요.

다 괜찮았습니다. 괜찮다고 말 할 수 없었지만, 괜찮다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고.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고.

비어버린 자신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이들이 더 힘들 테니까,나는 괜찮다고.

 


그대야.

그대에게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차마, 그 이상 더 말했다가는 온 몸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감각을 지울 수 없을 것만 같아,

나는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와의 약속을 영영 잃어버리고 만 것이냐고.

찾지도 못할 이 넓은 우주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 속에 기어이 잃어버리고야 만 것이냐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남겨지는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 그 모래알처럼 많은 존재들 중에서 잃고 싶지 않은 것과 잃어도 되는 기억들, 그리고 그 우선순위가 있다면 나와의 기억은, 그리고 나와 했던 약속은 어느 지점에 서 있었는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당신의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 품 안에 가득 쥐어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는데, 당신 또한 그러했었는지…….

 


우습지요? 그리고 못되었지요.

이런 내 모습을 안다면, 또 다시 기억을 만들어 가면 되는 거다, 그렇게 말해주었던 당신은 내게 등을 돌릴까. 어쩌면, 난 당신에게 아무 존재도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잊힌 기억들에 숨을 고르고자 지난 일기들을 읽어 올라가 보았습니다.

당신에 관한 일기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나는 그 때부터 당신을 눈에 담고, 시선을 쫓고 있었군요. 비록 당신은 잊었으나 나에게만은 남겨진 당신과의 기억이 적다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그대야.

이 공백에는 오롯하게 홀로였기에, 다만 이 모든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중한 그 무언가를 잃더라도.

당신은 또 다시 나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대를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당신을 향한 생각을.

당신에게 닿고 싶은 이 시선을.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당신을. 그 누구도, 심지어 당신마저도 원하지 않을, 감정을.

 


전부 이곳에 묻어두려 합니다.

엉켜진 실타래에 끊어지고 되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와도

이정표를 보고 다시금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아깝지 않고, 다시금 숨 막히도록 차오를 테죠.

이기심이라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헛된 노력이라 해도, 괜찮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줄의 이야기를 이곳에 남겨둘 것이기에.

 


스크린 바깥으로 반짝이는 별들이 무수히도 많습니다.



이 무수히 많은 별들 속에, 잃어버린 것들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만 글을 줄입니다.

 









──인 데버 CMO 에드워드 아벨의 유품 발견 된 일기장에서 부분 발췌.

 

 

Posted by 유정s
,


*앞뒤 생각 안하고 써갈긴 거니까 그냥 읽어주시기...

*캐붕 미안합니다 증말...ㅅ ㅏ랑해 

*블락하지마






 

페란사는 걸었다.

한 눈에 보아도 평균보다 한참은 말라있는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새카만 정장이 흐르듯 감싸고 있어, 마냥 맑은 햇살이라고는 들어차지 않을 것만 같은 차림이었지만 스스로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저 걸었다.

 

길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맑은 하늘의 주말이어서 그런 것인지, 북적이며 쓸려가는 생김새가 저마다의 목적을 품은 채 웃음을 매달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갈피를 잃어버린 듯 새카만 구두를 신고, 또각거리는 걸음소리로 그 흐름 속에서도 어딘지 메마른 눈으로 흐릿하게 걸어가는 그녀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그래. 마치 역류와도 같아서.

 

페란사는 걸었다.

어디를 그렇게 정처 없이 걷느냐고 물어도, 답할 수 없는 걸음이었다. 다만 그녀는, ‘가야한다라는 생각에 그만 삶과 죽음을 등지고 서 그저 자박거렸다. 누군가가 어깨에 부딪혀 미안하다고 중얼거려도 괜찮다 속삭였지만 그때 뿐, 페란사는 또다시 흐려진 붉은 눈을 하고서, 다시금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불편한 구두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혹사를 당한 발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멈춰 설 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말했어야 할까. 그래, 그럴 수가 없었다. 또 이러지. 내가 그러지 말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의 신체능력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그래도 걱정되니까.

 

, 알겠어. 페란사는 희미하게 웃은 채 누군가에게 하는 지 모를 목소리를 중얼거렸다.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아. 페란사는 천천히 구두를 벗은 채, 마치 잘려진 목처럼 손가락 틈새에 걸리어 덜렁거리는 구두 한 쌍을 매달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언제쯤이면 멈춰 설 수 있을까.

글쎄,

그저 그 끝 무렵에는 네가 있었으면 했다.

 

*

 

그 험한 길을 휘여휘여 가버린 그대에게.

 

*

 

태어난 이상 모든 생명체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죽음은 찾아온다.

하물며 신에게마저 찾아온다는 그 필연적인 어둠을, 한낱 피조물이 그 절대적인 죽음 앞에서 반항할 수가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그 마지막 정도는, 놓치지 않도록 내내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만,

넓어진 우리의 세상은 만날 수 없는 인연을 만나게 해줌과 동시에 그 우주보다도 더 깊었던 슬픔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있잖아.

너를 만난 것에는 단 한 치의 후회도 없지만,

이런 결말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걸까.

 

*

 

마치 흘려버린 것 같은 정신을 어느 정도 돌아오게 만든 것은 용케도 흘리지 않고 들고 온 패드의 알림 때문이었다. . 페란사는 그제야 제가 옆구리에 낀 패드를 잃어버릴세라 옆구리에 낀 채 정처 없이 걸어왔음을 깨달았다. 장례식에는 갑작스러운 원의 죽음에 찾아온 동료들과 여러 스타플릿 관계자들, 그리고 한 치의 모습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티모시가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찾아왔었다.

 

이렇게 일찍 떠나갈 거라고, 그녀를 위로하듯 많은 이들이 수많은 말마디를 쏟아내었다.

많고, 많고, 아주 많아서. 꼬박 그 언어들에게 압사당할 것만 같은 그 묵직한 추모의 목소리들을.

 

소령께서 이렇게 일찍 가실 줄은 몰랐는데……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만해.

 

그는 편안하게 잠들었을 겁니다.

 

아니야.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로 넘실거렸다.

눈을 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자들로 쏟아져서,

 

 

 

쏟아져 내렸는데…….

 

……페란사.”

 

뚜벅, 누군가의 걸음이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으로 멈춰 섰다.

 

*

 

정리가 되면 건네주겠다고 한 데이터의 정체는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엉성하게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제 키가 작은 탓에 원은 한참이나 몸을 숙여야지만 힘겹게 저와 사진 한 장을 찍을 수가 있었다. 아마 이 때도 그랬을 테지. 페란사는 흐릿한 시야로나마 피식, 가볍게 웃으면서도 패드에 떠오른 오래된 사진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아마도 우리가 인데버 호에서 항해하고 있었을 때의 순간일 것이다.

페란사는 조심스럽게 난간에 기대어 앉아, 맨발로 걸어 다닌 덕에 쓰라린 통증이 달려드는 발을 무시하고 내도록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이야 개발된 백신으로 기억도 되찾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무엇인가 크게 빠져버린 공허함에 어쩔 줄을 몰랐었다. 아마도, 정신없이 빠져드는 잠에 정처 없이 헤메이다 그만 서로의 기억을 잃어버렸던 그 순간들. 머리로는 너를 모른다 외쳤지만, 가슴은 어쩐지 그렇지 않아 참으로 아프고,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사진으로, 남겨볼까요. 또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페란사는 티모시를 떠올렸다. 인데버 호에서 겪은 사건들로 인해 더 이상 인데버 호는 항해를 할 수 없어 지구에 도착해 하선을 하는 통에 사라져버린 패드에 그 때 찍은 사진마저도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어딘지 아쉬워 자꾸만 돌아보는 자신에게 원이 사진은 다시금 쌓일 우리의 관계처럼, 다시 찍으면 그만이라 말해주어 겨우 미련을 털어버렸었다.

 

이렇게 다시 되찾을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을 생각하면서 찾아준 그에게 감사인사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

페란사는 옅게 웃으며, 다시 한 번 화면 위에 조금은 굳은 표정인 원의 모습을 쓸어보았다. 검고 푸른 한 쌍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란사는 곡선을 그리듯 흘러가, 그의 눈가 또한 쓸어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따라가고, 따라가서.

 

 

우연히 잃어버리셨다는 패드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소중한 사진이 들어있었다죠. 예전부터 찾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무엇도 채울 순 없겠지만, 심심한 위로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당신의 눈처럼 푸르른 눈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도 그 때의 사진이 패드에 떠올라,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추억은 그렇게 잔존했다. 이미 흘러가버린 자신만을 남겨두고서.

 

페란사는 옅게 웃음 지었다.

떨어져 내리는 눈물 자욱을 머금은 웃음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신이 없는 세상의 아래였다.

Posted by 유정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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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2016. 5. 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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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

2016. 5. 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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