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ㅡ김선우, <낙화, 첫사랑> 中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던 별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말갛게 빛을 대지위로 흩뿌리던 달이 제 모습을 숨긴다. 어두운 밤이 조금씩 스러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하늘에서는 달과 별이 종적을 감추고 푸르스름한 새벽이 찾아올 터였다. 어제와 오늘이 그러할 터였고, 다가올 내일이 그러할 것이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곳에서 팽개쳐진 짐짝처럼 동떨어진 것은 가람 그 자신뿐이었다. 그럼에도 소중한 무엇인가가 사라진 세계의 공기는 이렇게나 낯설다. 가람은 눈을 감았다 뜨며 천천히 신당으로 들어섰다.
오래전에 버려져 관리가 되지 않은 탓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곳이었지만 신당은 신당이었다. 그러한 신성한 곳에 감히 흙발로 들어선 가람은 일말의 죄책감도 일지 않는다는 듯이 유리알보다도 투명한 홍옥의 눈동자를들어 신당의 정 중앙에 걸려 진 주작신의 영령을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불을 품고 있는 주작신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이 세계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질법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꼭 가람의 기억 속에 있는 누군가와 참으로 많이 닮아있었다.
병마에 휩싸여 죽어가는 듯 살아가는 네 창백한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고,
새빨간 머리카락은 시들어가는 꽃의 그것임에도 타오르는 불꽃처럼 생생하고 아름다웠던—
가볍게 들어있는 가방이 스르륵 빠지는 손힘에 어깨를 타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가람은 모든 것을 내려다보듯 고고하게 타오르는 주작신의 앞에 홀로 서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수록 붉은 신의 눈동자가 엄동설한을 품은 듯 매섭게만 보인다. 가람은 우뚝, 감히 제가 부정했던 신의 앞에 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아래로, 끝없는 아래로 향하는 그의 모든 것이 마침내 고개를 숙인다. 토해내듯 숨을 내뱉었다.
당신을 믿지 않는다.
신이여, 나는 당신을 부정한다. 그 가엽고 아름다운 이를 살리지 못한 당신을.
누구보다도 축복받아야 할 이를 끝내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눈을 감게하는 운명을 준 그대를.
하지만, 만일 주은찬을, 단 한번만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잠시라도 좋으니. 찰나여도 좋으니.
인사를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당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발.”
한자 한자, 떨려오는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내뱉는 가람의 눈에서는 이미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편없이 목소리가 떨려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만일 당신이, 신이 존재, 한다면…….”
주은찬을 만나게 해달라고.
이제는 무너져 내린 몸을 일으킬 여지가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분명 네 영정 앞에서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눈물이 이곳에서는 이리도 쉴 새 없이 흐르는지 모르겠다. 마르도록 터져 나오는지 모르겠다. 장례식장에서도 나지 않았던 현실이, 이제는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그 사실이 뼈저리도록 실감이 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가람은 터져 나오듯 흘러내리는 감정에 모든 것을 다해 주작신의 영령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당신이 이럴 수는 없어! 주은찬이 무엇을 잘못했어? 그저 태어날 때부터 당신이 내려준 그 저주받은 불치병으로 인해 한평생 괴로워하다 죽어간 죄밖에 없는 그 아이를!”
당신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있다면.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티끌의 가여움이 남아 있다면.
“조금이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가여워하고 사랑했더라면,”
아직 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그리도 허망하게 떠나보냈다.
주은찬, 나는 인정하지 못해. 그러니까 나는 다시 너를 만날 거야.
신에게 칼을 겨누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앞에서 구걸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은찬을 단 한번만 만나게 해줘……!!”
나는 모든 것을 할 거야.
이마가 차가운 땅에 닿았다. 두 손을 맞잡아 감히 신 앞에 내보인다.
이렇게 빌 테니, 제발…….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위하여. 가여운 생명을 위하여.
눈을 감았다.
「이후로 천년 후에나 들릴법한 간절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가 했더니….」
청룡의 아이였구나.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거짓말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퍼져나가듯 울렸다. 가람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것은 순전히 제 의사와는 무관했음에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야한다는 생각에 저절로 올라가는 시선의 끝, 낡아빠진 재물대 위에 살며시 내려앉은 여인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타오르는 붉은 머리칼이 꼭 뒤에 있는 주작신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아니, 마치 그가 이 낡은 신당으로 현신한 것처럼 모든 것이 겹쳐보였다.
가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여인은 주작이노라고. 그의 눈에서 채 가시지 않은 눈물이 방울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너희의 그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자존심을 땅에 던져버릴 만큼 네게 그 아이가 그리도 소중한 존재더냐.」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의 아이의 말은 들어주고 싶지 않지만, ……가 원한 것이니 들어줄 수밖에 없겠군. 좋다, 너를 주은찬과 만나게 해주겠다. 그러나 지금부터 네가 만날 주은찬은 너의 주은찬이 아닌 다른 주은찬일 것이야. 다른 세계에 살아가나 똑같은 운명을 타고난 아이.」
다른 세계. 다른 주은찬.
외모와 목소리, 행동까지 어느 하나 틀린 것이 없지만
그것은 자신이 아는 주은찬이 아닌 또 다른 주은찬.
……결국 이세계에서도 행복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너.
“…상관, 없습니다.”
「……아이는 죽어가고 있어. 일주일이란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아. 그 정도면 충분히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이겠지.」
자, 그럼
주작신의 손이 가람의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았다. 그 손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눈이 부셔 가람은 깜빡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포근하고 따스한 빛은 온 시야를 점령하듯 퍼져나갔다. 가람은 그 기분 좋은 감각에 몸을 맡기며 정신을 놓았다. 온전하게 정신이 아득해진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여인의 서글픈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
눈을 떴다.
가람은 낡은 신당에서 다시금 눈을 떴다. 빠르게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자 같은 신당임에도 가람의 직감이 이전과는 다른 곳의 신당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이미 몸은 차디찼지만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였으니 서둘러 가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한낱 한시가 아쉬운 이 순간에 제 몸을 살필 겨를은 없었다. 뻣뻣해진 몸은 전보다 말이 아니었지만 조금만 걷는다면 금방 풀어질 터였다. 가람은 바깥으로 나서자 어김없이 불어 닥치는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산을 타고 내려갔다. 그가 어디 있다는 언질은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럼에도 가람은 산 아래, 늘 저와 은찬이 함께 있었던 그 집에 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한걸음 또 한걸음. 멀리서 익숙하고 낯선 집이 한 채 보이기 시작했다. 가람은 순간적으로 멈춰선 걸음을 다시금 옮겼다.
가람의 기억 속에 꼭 들어맞는 한옥집이었다. 낡고 오래된 한옥은 그럼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포근하고 따뜻한 내음이 서려있었던 곳이었다. 그렇지만 이 집은 허하고 서늘해서 도통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가람은 주먹을 쥐며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집의 대문을 천천히 밀었다. 나무문이 마찰음을 내며 서서히 제 몸을 열어 집 안의 풍경을 내뱉었다. 그 집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나무문이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가며 입을 닫았다. 주변은 곧 정적에 휩싸였다.
콜록콜록-
아니, 정확하게는 집 안에 있는 누군가의 기침을 내뱉는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익숙한 기침소리에 가람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이렇게 몸 멀쩡한 자신이 추워 움츠릴 정도로 추운 서늘한 기온이었건만
미련할 정도로 멍청한 너는 문을 활짝 열어둔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끊임없이 밭은기침을 토해내면서도 문 밖의, 그 담장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너의 눈은 마치 하늘 위의 구름을 좇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을 따라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가람은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미닫이문이 활짝 열려있는 곳으로 신을 벗고 들어서 문을 성큼 닫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던 방안이 문이 닫힘으로써 차단됨에 따라 은찬은 흐릿한 시야를 들어 갑작스럽게 들어서더니 문을 닫은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집안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문을 닫아거는 뒷모습이 처음 보는 사람의 그것임에도 어딘지 익숙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옷을 걸친 남자의 모습은 짧게 자른 연갈색 머리카락에 앳된 남자의 그것이었으나 말없이 문을 닫아건 채 뒤돌아서지 않은 그 모습이 꼭 은찬에게는 마침내 저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처럼 보였다. 은찬은 계속된 기침으로 쉰 목을 짜내어 눈앞의 존재에게 말을 내뱉었다.
“누구, 세요……?”
“…….”
“혹시 저승사자세요…?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느꼈는데, 그게 오늘 이었던가요…….”
사자는 말이 없었다. 꼭 그것이 무언의 긍정 같아 은찬은 꼭 눈을 감았다.
은찬은 잘 알고 있었다. 급속도로 나빠지는 몸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막상 어렸을 적부터 내내 생각했던 그 일이 눈앞으로 닥치자 조금은 두려웠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알고, 자신의 주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은찬은 편안한 표정을 내보이며 앞으로 자신을 데려갈 사자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어서 자신을. 이 고통에서……
“뭐라는 거야, 바보 같은 게. 어딜 봐도 사람이잖아. 주은찬 너란 인간은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구나.”
“……? 절 아세요?”
“저승사자라며? 저승사자라면 자신이 데려갈 사람정도는 알겠지, 뭐.”
그나저나 멍청하게 문은 왜 열고 있어, 있기는. 안 그래도 금방이라도 픽 쓰러질 것같이 생긴 게.
은찬은 눈을 크게 떴다. 뒤 돌아서 자신을 향해 한쪽 무릎을 굽힌 채 날카로운 말을 툭툭 내뱉고 있었지만 열이 어느 정도 있나 살펴보기 위해 제 이마에 올리는 남자의, 차라리 소년이라고 함이 더 어울리는 소년의 손길은 바깥에 오래있었는지 무척이나 차디찼지만 그럼에도 따스해서, 은찬은 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소년이 자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마주치는 소년의 눈이 붉었다. 다홍빛에 가까운 소년의 붉은 눈동자는 티 없이 맑고, 또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저를 향한 마음이 느껴져서—
“그만 고집부리고 자라. 버티기 힘들 텐데.”
은찬은 저도 모르게 저승사자인지 사람인지 모를 소년의 말에 이끌리듯 밀려들어오는 죽음과도 같은 잠으로 침강했다.
-
은찬은 어둠속을 걷고 있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어둠 속을 걷다보면 항상 저와 꼭 같은 붉은 머리의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저와 같이 아파 늘 침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언제 어디서나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은찬은 씁쓸해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내만 나오는 장면에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은찬은 낯설고도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그 앞으로 밝고 따뜻해 보이는 갈색머리를 짧게 하고 있는 붉은 다홍빛의 소년이 저와 똑같이 생긴 사내의 옆에서 사내의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
천천히 쉬어버린 목으로 사내가 소년에게 건네는 첫마디.
그것은, …….
“……가람.”
은찬은 눈을 떴다. 소년이 제 곁에서 차가운 물에 적셔 수건을 짜내고 있었는지 분주한 손길이 한창이다. 흐릿한 시야를 들어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청가람…….”
그러자 옆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소년의 손길이 거짓말같이 우뚝 멈춰 섰다. 흐릿하여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놀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은찬은 저도 모르게 설핏 웃음 지었다. 그래, 그것이 너의 이름이구나. 꿈에서 나온 소년의 모습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소년과 겹쳐보였다. 그것은 닮은 것이 아닌 소년 그 자신의 모습이었다.
“너….”
“가람아.”
너는 가람이구나.
네 이름은 청가람 이구나.
꿈에 보았던 사내와 함께 있던 네가 어찌해서 나에게 까지 왔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에게 손을 뻗는다. 말없이 잡아주는 손의 온기가 따스했다.
고맙고 또 고맙다. 마지막까지 혼자 쓸쓸히 가야할 줄만 알았건만 이렇게 와주어서.
그 온기를 나에게도 나누어주어서 한없이 고맙다.
은찬은 맑게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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