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생각 안하고 써갈긴 거니까 그냥 읽어주시기...
*캐붕 미안합니다 증말...ㅅ ㅏ랑해
*블락하지마
페란사는 걸었다.
한 눈에 보아도 평균보다 한참은 말라있는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새카만 정장이 흐르듯 감싸고 있어, 마냥 맑은 햇살이라고는 들어차지 않을 것만 같은 차림이었지만 스스로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저 걸었다.
길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맑은 하늘의 주말이어서 그런 것인지, 북적이며 쓸려가는 생김새가 저마다의 목적을 품은 채 웃음을 매달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갈피를 잃어버린 듯 새카만 구두를 신고, 또각거리는 걸음소리로 그 흐름 속에서도 어딘지 메마른 눈으로 흐릿하게 걸어가는 그녀와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그래. 마치 역류와도 같아서.
페란사는 걸었다.
어디를 그렇게 정처 없이 걷느냐고 물어도, 답할 수 없는 걸음이었다. 다만 그녀는, ‘가야한다’ 라는 생각에 그만 삶과 죽음을 등지고 서 그저 자박거렸다. 누군가가 어깨에 부딪혀 미안하다고 중얼거려도 괜찮다 속삭였지만 그때 뿐, 페란사는 또다시 흐려진 붉은 눈을 하고서, 다시금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불편한 구두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혹사를 당한 발이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멈춰 설 수가 없었다고, 그렇게 말했어야 할까. 그래, 그럴 수가 없었다. 또 이러지. 내가 그러지 말라니까.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당신의 신체능력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그래도 걱정되니까.
응, 알겠어. 페란사는 희미하게 웃은 채 누군가에게 하는 지 모를 목소리를 중얼거렸다.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아. 페란사는 천천히 구두를 벗은 채, 마치 잘려진 목처럼 손가락 틈새에 걸리어 덜렁거리는 구두 한 쌍을 매달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언제쯤이면 멈춰 설 수 있을까.
글쎄,
그저 그 끝 무렵에는 네가 있었으면 했다.
*
그 험한 길을 휘여휘여 가버린 그대에게.
*
태어난 이상 모든 생명체들에게 숙명과도 같은 죽음은 찾아온다.
하물며 신에게마저 찾아온다는 그 필연적인 어둠을, 한낱 피조물이 그 절대적인 죽음 앞에서 반항할 수가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그 마지막 정도는, 놓치지 않도록 내내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만,
넓어진 우리의 세상은 만날 수 없는 인연을 만나게 해줌과 동시에 그 우주보다도 더 깊었던 슬픔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있잖아.
너를 만난 것에는 단 한 치의 후회도 없지만,
이런 결말이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숨이 막히는 걸까.
*
마치 흘려버린 것 같은 정신을 어느 정도 돌아오게 만든 것은 용케도 흘리지 않고 들고 온 패드의 알림 때문이었다. 아. 페란사는 그제야 제가 옆구리에 낀 패드를 잃어버릴세라 옆구리에 낀 채 정처 없이 걸어왔음을 깨달았다. 장례식에는 갑작스러운 원의 죽음에 찾아온 동료들과 여러 스타플릿 관계자들, 그리고 한 치의 모습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 티모시가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찾아왔었다.
이렇게 일찍 떠나갈 거라고, 그녀를 위로하듯 많은 이들이 수많은 말마디를 쏟아내었다.
많고, 많고, 아주 많아서. 꼬박 그 언어들에게 압사당할 것만 같은 그 묵직한 추모의 목소리들을.
─소령께서 이렇게 일찍 가실 줄은 몰랐는데……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만해.
─그는 편안하게 잠들었을 겁니다.
아니야.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로 넘실거렸다.
눈을 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는 자들로 쏟아져서,
이
렇
게
쏟아져 내렸는데…….
“……페란사.”
뚜벅, 누군가의 걸음이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으로 멈춰 섰다.
*
정리가 되면 건네주겠다고 한 데이터의 정체는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 엉성하게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제 키가 작은 탓에 원은 한참이나 몸을 숙여야지만 힘겹게 저와 사진 한 장을 찍을 수가 있었다. 아마 이 때도 그랬을 테지. 페란사는 흐릿한 시야로나마 피식, 가볍게 웃으면서도 패드에 떠오른 오래된 사진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아마도 우리가 인데버 호에서 항해하고 있었을 때의 순간일 것이다.
페란사는 조심스럽게 난간에 기대어 앉아, 맨발로 걸어 다닌 덕에 쓰라린 통증이 달려드는 발을 무시하고 내도록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이야 개발된 백신으로 기억도 되찾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 때 까지만 해도 무엇인가 크게 빠져버린 공허함에 어쩔 줄을 몰랐었다. 아마도, 정신없이 빠져드는 잠에 정처 없이 헤메이다 그만 서로의 기억을 잃어버렸던 그 순간들. 머리로는 너를 모른다 외쳤지만, 가슴은 어쩐지 그렇지 않아 참으로 아프고,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사진으로, 남겨볼까요. 또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페란사는 티모시를 떠올렸다. 인데버 호에서 겪은 사건들로 인해 더 이상 인데버 호는 항해를 할 수 없어 지구에 도착해 하선을 하는 통에 사라져버린 패드에 그 때 찍은 사진마저도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어딘지 아쉬워 자꾸만 돌아보는 자신에게 원이 사진은 다시금 쌓일 우리의 관계처럼, 다시 찍으면 그만이라 말해주어 겨우 미련을 털어버렸었다.
이렇게 다시 되찾을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을 생각하면서 찾아준 그에게 감사인사라도 하는 것이 좋겠다.
페란사는 옅게 웃으며, 다시 한 번 화면 위에 조금은 굳은 표정인 원의 모습을 쓸어보았다. 검고 푸른 한 쌍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란사는 곡선을 그리듯 흘러가, 그의 눈가 또한 쓸어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따라가고, 따라가서.
「우연히 잃어버리셨다는 패드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소중한 사진이 들어있었다죠. 예전부터 찾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무엇도 채울 순 없겠지만, 심심한 위로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당신의 눈처럼 푸르른 눈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도 그 때의 사진이 패드에 떠올라,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추억은 그렇게 잔존했다. 이미 흘러가버린 자신만을 남겨두고서.
페란사는 옅게 웃음 지었다.
떨어져 내리는 눈물 자욱을 머금은 웃음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당신이 없는 세상의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