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았다.
그렇기에 더없이 부족하기만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직은 채 새벽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저도 모르게 떠진 눈은 몇 분간 가만히 천장 위를 바라보았던가. 무의식적으로 점등을 외칠 뻔했던 졸음에 잠긴 목소리는 제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팀의 모습에 아차 싶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우기는 싫었기에 네 고동빛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주다, 이내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 이르게 찾아온 새벽 속의 아침은 저로도 족했다.
그렇게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서면, 간밤에는 끊이지 않게 복작였을 거실을 지나쳐 가만히 테라스의 문을 연다. 그 열린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은 채 밝아지지 않는 새벽의 바람. 커피라도 타서 이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면 좀 더 좋았으려나 곱씹어 보다가도 이내 커피는 마시지 말라며 부드럽게 타일렀던 네 목소리가 떠올라 이내 말아버리고 만다. 그렇게 익숙하고 향기로운 커피의 향도, 곁에 자리하고 있었던 따스한 체온 또한 있지 않아, 테라스를 딛고 서있는 건 오롯한 자신. 채 사라지 않은 머리 위의 우주와, 수많은 별과, 간 밤에 스쳐 지나갔던 잃어버린 과거의 조각. 그 수많은 것들이 뒤엉켜버렸기 때문이었다.
‘ㅡ니나.’
지금보다는 더 어렸고, 어린 만큼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내가,’
내가 널 죽였어.
그 시절의 빼앗긴 이야기들이 문득 꿈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에.
걸치고 나온 카디건을 조금 더 여몄다. 더디게만 흘러가는 이 새벽 속에 잠기는 것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던 기억의 단편.
바람이 분다. 살갗 위로 스치는 그 감촉이 느릿하게 타고 흘러들어와, 드문드문 비어 있는 기억을 찾아 그 서리를 품은 채 또아리를 틀었다. 마치 제가 있어야 할 곳은 그곳이라는 듯이.
*
생각해 보면, 그 전까지 부족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똑똑한 머리와 재능.
훌륭하신 부모님과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언니. 부족하지 않은 환경. 사실 모든 것이 그랬지. 부족한 줄 모르고 살다가, 잃어버려서야 알게 되는 게 그 풍족함이라고 누군가는 그랬다. 그러니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병으로 쓰러졌던 일곱 살의 그 해 말이다.
아직은 어렸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과학이 발전하고 발전해 저 미지의 우주까지 나아가는 게 지금의 시대라는 데, 그 시대에서도 치유하지 못하는 희귀병이 자신에게 있을 줄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온 세상이 노래지다 못해 희게 질려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가 관두었다. 몸은 점점 질려가는 백지장처럼 나빠져만 가고 이러다가 온 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 그게 다가 아닌, 저가 아프기 시작하자 온 집안이 마치 죽음을 직전에 앞둔 듯이 슬픔에 휩싸였던가, 그래서 언니는 제 손을 붙잡고 우는 듯 말았던가. 확실한 것은 저 하나로 인해 부족함이 없었던 그 삶이, 그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병마에 드리워진 듯 좀먹혔다는 것이었다.
병실 바깥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 좋아했던 여름이 찾아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시간엔 그저 창문 틈으로 쏟아지는 여름의 햇살 한 자락이라도 잡아보려 손을 뻗어, 시간이 흐르면 찾아오는 어두운 밤의 수놓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저 수 많은 별들 사이로 헤쳐나가는 기분은 무엇일까. 병든 몸은 여기에 있지만 꿈 속에서라도 그 어드메에서 만난 고래의 등을 타고 넓은 우주를 유영하던 시간들,
아마 그때부터였겠지. 우주로 향하는 게 일생의 꿈이자 목표가 된 것이.
잠에 들면 여전히도 꿈속에서 만난 환상의 존재와 함께 별들 사이를 걷곤 하던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아보자면, 사실 그렇게 큰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어린 마음에 자유로워 지고 싶었던 순간엔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를 꿈꿨기 때문에,
조금쯤은, 막연히 생각했던 그 길을 따라 걸었을지도 모르지.
어린 시절의 아팠던 기억은 강했고, 그 시절의 꿈 또한 선명하게 드리우는 법이었다. 그래서, 막연히 생각하고 생각해왔던 그 기억을, 꿈을 따라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 걸었기 때문에, 아카데미 입학 통지서를 받고도 조금쯤은 정신이 멍했다.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 한 막연한 일이 현실로 손에 쥐어서?
아니, 그게 아니었다. 감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든 입학 통지서. 그리고 갖춰 입은 붉은색 제복은 참으로 이상해서, 마치 있어선 안 될 곳에 끼어든 불청객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각자 저 마다의 이상과 꿈을 안고 찾아드는 별들의 공간에서, 단지 그 어렸을 때의 기억만을 품에 안고 고찰도 없이 끼어든 이 존재란 무엇이었을까?
아직은 어렸던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소한 계기일지라도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아직은 몰랐기에, 그저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여직 자라지 못한 정신은 사소하게 흔들려서, 꼬박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물론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런 나의 바보같은 생각을 바로잡아준 ‘-’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
분명히 존재했던 기억 속의 ‘-’는 마치 가위로 그 부분만 잘린 채 도려졌기 때문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의 범람 속에서 마치 허리가 잘려진 듯 그 부분에서만 제자리였다. 저 멀리에서 희끗하게 올라온 태양이 보인다. 새벽도 이제는 끝인 모양이지.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우주라고, 그 꿈을 조금 더 확고하게 지켜준 너.
이제는 그 존재가 누구인지는 아는데, 기억 속의 너는 여전히 난도질을 당한 듯이 제자리다.
선명하게 푸른 도화지에 그 부분만 먹을 칠한 듯이 생각이 나지 않아, 꼬박 차오르는 설움에 머리를 매만져 보아도 떠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안젤라.’
떠오르는 것은 네가 불러주었던 그 이름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 천사의 이름을.